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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로랑생 작품 관람전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기


언젠가부터 로랑생에 빠져있던 나.
프랑스로 가서 그녀를 만나기 힘들다면, 도쿄로  가서 그녀를 만나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서울에서 그녀의 작품을 마주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로랑생의 몽환적 파스텔톤을 만나기  전에 그녀의 삶을 좀 이해하기 위해 적어봅니다.

프랑스의 화가이자 시인인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1956)**은 파스텔톤의 부드럽고 몽환적인 화풍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의 작품 속 여성들은 한없이 우아하고 신비로워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로랑생의 실제 삶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실연, 망명, 그리고 고독으로 얼룩진 지독히도 어두운 터널이었습니다.
그녀가 마주해야 했던 삶의 그늘을 몇 가지 핵심적인 사건들로 짚어봅니다.
1. 사생아라는 출생의 낙인과 엄격한 어머니
마리 로랑생은 고위 관료였던 아버지와 해녀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가끔씩만 집에 들렀고, 마리는 성인이 될 때까지 그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딸을 보호하기 위해 극도로 엄격하고 폐쇄적인 환경에서 마리를 키웠습니다. 이러한 우울하고 통제된 유년 시절은 그녀에게 깊은 고독감을 심어주었고, 훗날 그녀가 현실을 벗어난 환상적인 그림에 몰두하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2. 기욤 아폴리네르와의 격정적인 사랑, 그리고 비극적 이별
로랑생의 예술과 삶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천재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입니다. 파블로 피카소의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은 격렬한 사랑에 빠졌고, 서로에게 위대한 예술적 영감을 주는 뮤즈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1911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 도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아폴리네르가 용의자로 선상에 오르며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비록 무죄로 풀려났지만 이 사건으로 인한 사회적 파장과 로랑생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로 인해 두 사람은 결국 결별하게 됩니다. 이별의 아픔 속에서 아폴리네르가 남긴 유명한 시가 바로 **<미라보 다리>**이며, 로랑생 역시 평생 이 이별의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3. 전쟁과 망명, 국적을 잃은 이방인의 삶
아폴리네르와 헤어진 후, 로랑생은 독일인 남작 오토 폰 왜젠(Otto von Wätjen)과 결혼합니다. 하지만 결혼 직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그녀의 삶은 걷잡을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습니다.
국적 박탈과 망명: 프랑스인이었던 그녀는 독일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조국 프랑스에서 '적국 고발자'로 몰려 국적을 박탈당했습니다.
스페인에서의 고독: 남편과 함께 스페인 등으로 망명 생활을 떠났지만, 향수병과 남편의 알코올 중독, 외도로 인해 정신적으로 완전히 피폐해졌습니다. 가장 화려하게 빛나야 할 30대 시절을 그녀는 타국에서 철저한 이방인이자 경계인으로 고통받으며 보냈습니다.
4. 제2차 세계대전과 전재(戰災) 속의 말년
독일인 남편과 이혼하고 겨우 파리로 돌아와 화가로서 명성을 되찾았을 무렵, 이번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집니다.
나치 독일이 파리를 점령하면서 그녀는 다시 한번 격동의 세월을 견뎌야 했습니다. 전후에는 독일 협력자라는 의혹을 받아 가택 연금을 당하기도 했고, 전재로 인해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말년의 그녀는 청력을 거의 상실한 채, 아폴리네르가 보냈던 편지들을 읽으며 지독한 고독 속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것은 잊힌 여자다."
— 마리 로랑생, 시 <진정제(Le Calmant)> 중

마리 로랑생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눈동자는 대개 검은색의 모호한 형태로 흐릿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세상의 모진 풍파와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기 힘들었던 그녀의 아픔이, 역설적으로 그토록 아름답고 몽환적인 핑크빛과 회색빛의 세계를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릅니다.